5. 가짜를 진짜로 믿는 교회?

예전에 다미선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를 정해놓고 기다렸다. 예수 믿음이 아닌 자기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이단 신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마귀도 광명의 천사를 과장한다. 그들은 가짜를 진짜처럼 믿게 하여 가짜 인생을 진짜처럼 살게 한다.

요즘 이단인 신천지가 교회 안에 숨어 들어와서 신앙생활 잘하는 모습을 보인다. 불신과 불만을 조장하려는 것이다. 교회 안에 침투한 사탄은 불만을 일으키고 불신을 조장한다. 또는 잘 믿는 것처럼, 진짜처럼 보여서 속인다. 성경은 거짓 영을 통한 거짓 선지자의 활동을 조심하라고 말한다. 거짓 영이 들어가면 거짓 영의 것을 주장한다.

구약의 예레미야 때도 그랬던 것처럼. 선지자는 많은데 예레미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였다. 열왕기상 22장에는 북이스라엘 아합 왕과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동맹국으로 함께 전쟁을 하게 되었다.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를 선지자에게 물어보게 된다. 하나님께서 아합 왕을 잡으려고 400명의 선지자에게 거짓 영을 집어넣게 되자 400명의 선지자가 다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미가야 선지자만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한다. 거짓 영을 믿게 되면 자기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듣기 좋은 말만 한다.

택함의 예정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이 설계하시는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늘의 얘기를 하면 쉽게 알아듣지 못한다. 니고데모가 복음을 알아듣지 못한다. 이는 신학교 교수가 신학적인 얘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요3:12).

땅의 일을 말해도 믿지 않는데 하늘의 것을 어찌 믿을 수 있냐는 말이다. 그래서 세상 TV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말씀을 알지 못하면 오해를 한다(마22:29). 노아가 방주를 지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지 않았는데 방주를 지은 것이 아니고 믿어졌기 때문에 방주를 지은 것이다.

말씀을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에 오해하게 된다.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머리에 두면 안 된다. 지금은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하는 지식의 싸움이 아니라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믿음의 싸움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근원인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아는 은혜에서 출발해야 한다.

-제67회 말통축제(5) 가짜를 진짜로 믿는 교회?,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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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수를 믿지 않는 교회?

성경전체의 초점인 예수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만약 성경의 초점을 잘 모르면 성경의 진리를 설명해도 잘 받아 드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설교자들이 비 진리를 설명하는 설교를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원하고 추구하는 것을 복음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과 사람의 복음이 다르기 때문에 오는 오차의 범위가 있는 것 같다. 교회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전하면 상대적으로 부흥은 잘 안 된다. 만약 된다면 그 부흥은 그 사람이 예수 믿고 예수님으로 사는 진짜 부흥일 것이다.

진리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여전히 껍데기처럼 앉아 있으면 속사람의 부흥은 없다. 믿는 자에게 부활은 결론과도 같다. 지금은 예수님이 계셨던 시대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실 예로, 미국의 모 신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학위 논문을 써서 논문 지도를 받는데 논문내용 중에 한 줄 정도 삽입된 예수부활의 내용을 본 지도교수가 “아직도 예수부활을 믿는 사람이 있구만”하더라는 것이다. 신학교 교수가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목회자들 중에도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분들이 있다. 예전에 함께 공부를 하던 모 교단 목사님의 간증을 들은 기억이 난다. 모 목사님이 목사안수를 받고 강화도에 있는 교회로 부임하여 목회를 하게 되었다. 그는 부활주일이 되어 부활절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른 목사님이 설교한 내용을 그대로 설교했다. 그랬더니, 교인들이 엄청 은혜를 받더라는 것이다. 정작 목사인 자기는 부활을 믿지도 않는데. 마음이 힘들었던 경험 속에서 나중에 믿게 되는 은혜가 있었다고 간증하였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신학교 교수가 있고 목사도 있다. 종교다원주의는 예수가 아니고도 얼마든지 구원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모르면서도 자기가 열심히 종교생활하면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 하였도다’(마22:29). 성경에서 말씀하는 부활을 믿지 않으면 세상에 매이게 된다. 부활은 우리가 이 땅에 살다가 죽으면 현상적으로 나타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죽기 전에도 부활신앙으로 살게 된다. 이것을 잘 모르면 세상에서 없어질 것들을 붙잡고 모으고 사는데 집중하게 된다. 천국에서 아무 필요도 없는 것을 위해 지금도 금을 향해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지는 않는가?

진짜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것 같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을 남겨 두셨다고 하신 것처럼.

눈을 뜨고 성경을 보고, 눈을 떠서 복음을 봐야 한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이 하늘을 보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고 말할 때 함께 서 있던 다른 사람들은 안 보인다고 한다. 예수 믿는 것이 다 이런 것이다. 사실을 말하면 다 미쳤다는 것이고 안 보이니깐 오해하는 것이다. 누가 오해고 누가 진짜인지 언제 아는가?

노아가 방주를 짓는데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배를 지어도 믿을까 말까인데 세상에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비가 오기 전까지는 노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미친 짓이지만, 비가 올 때 증명된다. 이것이 인내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되는 것을 믿는 것이 인내이다.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이 성도의 인내이기 때문이다.

* 추석명절에 흩어진 성도들이 주일예배를 통해 예수그리스도가 새로운 생명으로 믿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제67회 말통축제(4) 예수를 믿지 않는 교회?,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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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의 기준점은?

세상의 지식으로 하나님을 말하고 논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야만 깨달아 지는 것을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교회 안에도 예수 믿는 사람이 굉장히 적은 것 같다.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예수를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예수 믿는 것이 어떤 것인지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한다.

사람을 구원시킨 하나님께서 구원에 대한 정의가 있을 것이다. 그 정의를 나의 기준으로 해석하게 되면 왜곡되게 이해한다. 하나님이 나를 왜 구원시켰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을 복음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복음적인 것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삼위일체 적이므로 하나님께 기준이 있다. 내 안에서 삼위 하나님이 기준이 되어 줄 때만 이해가 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인 믿음으로 구원이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그날 택함 받은 자들도 그때 이미 함께 죽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도도 현재시제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고 예수 믿음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으로 믿는 것은 내 믿음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성도의 인내가 내가 받은 하나님의 구원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에게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도록 방치한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이 먹을 수밖에 없는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아시고 선악과를 세워 놓으셨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어 사람들이 선악과를 먹었네”하면 무슨 하나님이란 말인가?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천국을 계획하신 대안이 있었다. 그러므로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고 그 계획안에 있는 복음이다. 이것을 모르면 신앙생활을 엉터리로 하게 된다. 성경공부, 기도, 헌금, 봉사 많이 하면 좋은데 하나님의 기준이 없는 신앙생활은 다 꽝이다.

그리스도를 알며 예수님이 성경 덩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을 다 공부해서 진짜가 나오면 예수그리스도만 나오게 된다. 사람들이 예수를 모르는 상태에서 믿는 경우의 수가 더 많다. 그러므로 다 살아보고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결론을 말해 놓으셨기에 결론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살면 성경이 그 믿음을 삶의 현장에서 점점 검증해 준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것을 다 알고, 다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알면 알수록 내가 진짜 그분을 모르고 있었는지를 알게 된다. 진짜 그분을 모르면 교만하게 된다. 진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죄인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 제일 헌신 많이 하는 사람이 예수를 진짜 모를 수도 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 성령이 가르쳐 줄 것을 믿어야 한다. 먼저 성경 보는 눈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을 잘 모르면 말만 잘하게 되고 생활은 더 교만스럽게 된다. 익은 곡식이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도 있는데 이상하게 사람은 고개를 더 빳빳하게 든다.

말씀이 머리로 가면 교만하게 되고 마음에 담겨 있으면 겸손하게 된다. 예수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으므로 겸손하게 된다. 예수님 있다고 하면서도 내가 나오는 것을 교만이라고 한다. 선하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내가 의인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고 내가 나오게 되면 여전히 선악과 먹은 악한 삶을 살게 된다.

-제67회 말통축제(3) 하나님의 기준점은?,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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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함과 택함의 갈림길?

신약성경에는 천국에 대한 설명을 혼인잔치로 비유하고 있다(마22장). 왕이 잔치를 준비하고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그들은 오기를 싫어한다. 그 이유는 소를 사서 일을 하고, 일을 해서 돈을 벌어 장가도 가야되기 때문이다. 다 인생살이 얘기다. 그래서 그들은 못 간다고 한다. 왕은 화가 나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아무나 데려오라고 한다. 많은 사람이 왔다.

성경에서 말하는 혼인잔치는 천국 잔치이다. 예수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신부가 혼인하는 잔치이다.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는 내용은 천국이다. 왕이 초청한 혼인잔치에 못 간다고 한 사람들이 혼인잔치 초대장을 들고 온 종들을 잡아 죽인다. 잔치에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되는 것이지 그 심부름꾼을 죽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종들을 죽인다는 것은 혼인잔치 비유가 복음이기 때문이다.

혼인잔치는 복음이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청함은 받았지만, 택함을 입은 자 곧 예복을 입은 자가 아닌 자들은 결국 쫓겨난다. 청함을 받았지만 택함을 받지 않은 자는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 또한 택함의 기준을 예복으로 설명하고 있다. 혼인잔치는 왕이 주는 예복인 세마포를 입고 와야 한다. 세마포는 성도의 옳은 행실인 예수 믿음을 말한다. 예수 믿는 것을 옳은 행실로 인정하는 것이다(계19:8).

두 죄인이 있는데 한사람은 예수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또 한사람은 그냥 죄인으로 있을 수 있다.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받아 드리고 안 받아 드리는 것이 어떤 기준에 의해서 결정 되는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너는 죄인인데 내가 너를 죄 없다’ 하는 것이 은혜의 복음이다. 이것이 복음인데 대부분은 예수 믿으면 구원이라고만 알고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이런 상태에서는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것은 은혜가 있어야 한다. 복음을 잘 설명한다고 해서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은 아니다.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잘 한 것도 없는 나를 죄 없다 하시고 택해 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청함은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며, 택함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죄인의 죄를 해결하고 예수의 의를 전가한 은혜이다.

-제67회 말통축제(2) 청함과 택함의 갈림길? ,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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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전에서 예배가?

구약에 익숙한 유대인들은 구약의 하나님을 완벽하게 몰랐다. 또한 신약의 예수그리스도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궁극적으로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학교에서는 공부를 하고, 직장에서는 일을 하고, 군대에서는 훈련을 하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를 공부하고, 예수의 일을 하기 위한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해야 한다.

교회는 다니는데 교회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고, 교회를 다니는 이유가 불분명 하거나 헷갈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 시대의 교회는 교회본질 보다는 비 본질을 더 많이 챙기다보니 중요한 핵심이 흐려지거나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교회는 한 마디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야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교회에서 아무리 많은 성경공부 반을 개설하여 연구하고 공부해도

예수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면 핵심을 놓치게 된다. 교회에서 애찬을 나누고, 봉사를 하고, 영어를 배우는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 교회가 뭐하는 곳인지 본질을 모르면 그야말로 동아리 모임 또는 단체생활이 되고 만다. 교회의 본질을 놓치면 곧 예수그리스도를 모르면서 교회를 다니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의미를 잘 모르고 예배만 많이 드리고, 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고 사람만 많이 만나면 진짜를 모르는 가짜 교인이 아닐까. 학생이 학교를 다니는데 공부는 안하고 친구나 보고 놀려고 가거나, 직장에서 일은 안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시간을 사용한다면 결과는 학교에서 낙제를 하고, 직장에서는 짤리게 된다.

교회에서 설교하고 교육하는 성경은 점진적으로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설명하고 하나님을 계시해서 정확하게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다. 구약의 말씀은 신약에서 강화되고 성취되고 이뤄지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에서 빗나가면 예배를 드려도 드려지지 않는 예배가 된다.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 예배가 드려지는 사람과 예배가 드려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예배의 기준을 내 쪽으로 잡고 드린다면 가인의 예배가 된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에서 거할 때 40년 동안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은 아모스서를 통하여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암5:25) 말씀하시고 또 사도행전을 통하여 ‘이스라엘 집이여 사십 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행7:42). 반복하여 너희가 광야에서 희생의 제사를 드렸는지를 재차 물어 보신다. 이는 40년 동안 예배를 드렸지만 하나님은 안 받았다고 하시는 것은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에서는 안 드렸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동물제사를 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나 자신을 받겠다는 것이다. 십일조 또한 10분의 1을 떼는 것을 드리는 자의 생명으로 받겠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부모가 하라고 한 일을 자식이 억지로 하는 것을 보면 하지 말라고 하거나 그 일을 해도 안한 것으로 정리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성경의 핵심을 알아야 진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 예수 믿으면 천국이지만, 교회 안에 있다고 해서 다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은 아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구약시대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것은 성전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드리는 제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건물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참 성전이 드리는 예배의 모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전에서 예배하는 것이 아닌 성전자체가 예배하는 것이 예배이기 때문이다.

-제67회 말통축제(1) 성전에서 예배가?,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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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신비!

연필의 나무 껍데기를 깍으면 연필심이 나온다.

사람의 육체 껍데기를 깍으면 마음심이 나온다.

고난의 목적은 육체의 욕망을 벗겨내는 복이다.

육체의 껍질이 벗겨져야 마음의 심비에 새겨진

새 계명의 실체 예수마음으로 살 수 있게 된다.

-조이- [120831]

 

시간과 영원의 만남!

지나온 과거 역사의 현재는

다가온 미래 성취의 현재와 만난다.

과거 시간의 출발(창조, 아담, 율법, 죄)과

미래 시간의 마지막(새창조, 예수, 은혜, 의)을 알면

그것이 영원 안에 사는 현재 그리스도인의 삶이 된다.

-조이- [120830]

* 시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영원한 새로운 세계를 본다.

밤과 낮의 구분이 없는 세상(계21:25, 22:5)은 재개발 주택에서 새로운 집의 형태이다.

 

순간을 영원으로!

무더운 여름의 절정을 말씀과 씨름 하다 보면

더워서 흘리는 땀이 아니라 진리로 샤워하는 시원함을 느낀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말씀의 진리로 오늘을 마지막으로 살아 본다.

오늘이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이며,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다가온 시간으로,

과거의 현재와 미래의 현재가 살아지는 오늘이 순간 속에서 영원하다.

-조이- [1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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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생명이 지킨다!

죽은 자는 생명 없는 것을 좋아하고,

살아 있는 자는 생명 있는 것을 사랑한다.

생명 없는 자는 생명 없는 것을 만들고,

생명 있는 자는 생명 있는 것을 찾는다.

죽은 자는 육체에 생명 없는 우상을 담고,

생명 있는 자는 우상을 깨트리고 예수를 담는다.

성도 안에 죽어 있는 옛사람이 살아 있는 것처럼,

위장하여 살아 있는 흉내를 내면 교만이 우상으로 싹튼 것이다.

성도 안에 살아 있는 새사람이 죽어 있는 것처럼,

비밀리에 살아 있는 것은 마음에 위장 잠입한 우상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라내기 위한 것이다.

-조이- [120828]

 

살려서 죽이고, 죽여서 살린다!

나는 죽었고, 예수로 산다.

아담 속의 인간과

예수 안에 인간은 존재가 다르다.

아담 안의 옛사람은 죽었고,

예수 안의 새사람은 살았다.

피조물 아담은 흙에서 사람이 되어 선악과로 죽고,

창조주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십자가로 죽어

피조물을 살리는 은혜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

-조이- [120827]

 

칼날 같은 영적세계!

생명의 혀는 필객의 붓과 같고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니

그 말씀을 머금은 입술은

검객의 칼날 같고 그 칼끝은 그리스도이다.

진리의 칼날이 비 진리를 가르고

생명의 칼끝이 사망을 찌르는 영적세계가 현실로 보인다.

-조이- [1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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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용서는 생명의 은혜!

얼마 전 직장암에 걸린 작은아버지를 뵙고 왔다.

수술을 잘 마치고 약 한달 동안 회복 중에 있다.

요즘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데 식욕이 없으시다.

의학은 암을 제거하기 위해 사람까지 죽게 만든다.

법은 암보다 더한 죄를 제거하려고 사람까지 죽인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암과 죄를 제거해야 하는데

암과 죄를 제거하려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생긴다.

죄만 제거하는 은혜처럼 암만 제거하는 의학이...

-조이- [120722]

 

먹이 감!

세상과 나는 옛사람에게 먹이를 주고,

말씀과 그는 새사람에게 먹이를 준다.

먹이 감이 다른 사람이 한 몸에 산다.

주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않게 하소서.

-조이- [120721]

 

미래를 사는 현재!

현재의 눈으로

과거의 역사를 볼 수 있다면

미래의 현재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것이 실체로 살 수 있는 진리입니다.

성경의 역사는 이미 역사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미래에 대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조이- [120720]

* 우상의 소굴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바벨론 포로로 우상의 소굴 갈대아로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

작전상 포로로... 눈을 열어 세상에서의 소명이 그 곳에서의 사명임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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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파편과 은혜의 핀셋!

저녁 식사 준비를 돕던 큰 딸이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다가 김치를 담은 그릇이 떨어져 깨졌다.

깨진 그릇의 파편을 골라내면 김치를 먹을 수 있다.

아깝게도 깨진 유리그릇과 함께 김치도 쓰레기 통으로 들어갔다.

깨진 미세한 유리파편이 김치를 뚫고 들어가 한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깝다고 먹었다가는 김치 속에 박힌 파편이 칼날이 되어 입안을 찌르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살면서 엉기고 찢기고 깨진 내 자아는 죄의 파편으로 죄와 한 몸이 되었다.

죄와 분리되지 않으면 죽은 생명과 같다.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 아깝다고 그런대로 살다가는

사람을 죽이는 칼날이 되어 심장과 마음을 찌르기 때문이다.

전혀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존재를

거룩한 생명으로 다시 살린 수술은 죄와 분리시키고,

 의와 연합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그 크신 은혜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조이- [120719]

 

새로운 방향을 향하여!

장사는 이익을 남기는 일이 아니고 사람을 남기는 일이다.

목회는 사람을 남기는 일이 아니고 생명을 남기는 일이다.

신앙은 자신을 남기는 일이 아니고 예수를 남기는 일이다.

장사하듯 목회하는 신앙생활은 사랑하고 축복하는 일이다.

오늘도 내 영혼이 그 길을 향하여 달려야겠습니다.

-조이- [120719]

 

세상과 다른 행복!

그리스도 밖에서 행복은

행복이 뭔지 모르는 행복으로

읽어버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은

행복하지 않는 것 같은 행복을

찾아서 기뻐하는 숨겨진 행복이다.

-조이- [1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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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을 살다!

시계時計는 항상 지금을 가리킨다.

시계視界가 어두우면 앞을 볼 수 없다.

지금을 볼 수 없다면 미래는 어두운 과거가 된다.

지금이 존재하는 이유는

지금이 은혜 받을만한 구원의 날이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름다운 이유는

지금이 사랑하고 축복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조이- [120718]

 

덮어쓰기!

구약의 동물제사는 첫 언약으로

사람이 지은 죄를 동물에게 전가시켜 죄를 덮어씌운다.

무죄한 아담의 불순종한 죄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는 죄가 덮어 씌워진다.

신약의 산제사는 새 언약으로

사람이 지은 죄를 예수에게 전가시켜 죄를 덮어씌운다.

무죄한 예수의 순종한 의는

의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의인이 되는 의가 덮어 씌워진다.

죄인은 자기의 죄를 사람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바쁘고,

예수는 자기의 의를 죄인에게 덮어씌우기 위해 바쁘다.

무죄한 예수에게 죄가 전가된 것처럼,

죄 많은 사람에게 의가 전가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사람의 죄가 예수에게 전가되고,

하나님의 의가 사람에게 덮어쓰기 당하는 것을 복음이라 한다.

죄를 덮어쓰기 할 것인가! 의를 덮어쓰기 할 것인가?

-조이- [120717]

 

그리스도의 대사!

암행어사는 마패가 있다.

그의 거지 행세는 초라한 모습으로

어사의 신분을 감추기 위한 작전이다.

마패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증표이다.

성도는 이 시대의 암행어사와 같다.

그의 왕 노릇은 곧 낮아짐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나타내기 위한 작전이다.

심비에 새겨진 말씀의 패는 사명자의 증표이다.

-조이- [1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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