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페북 글

 

작을수록 허리 굽히기 쉽고,

낮을수록 무릎 굽히기 쉽다.

작아지고 낮아지는 겸손은

크고 높은 것보다 크고 높은 은혜이다.

-겸손은 하나님의 은혜, 조이- [130927]

 

 

레위기를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이유를 이제 알았습니다.

레위기를 네 위기인지, 내 위기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기관리는 레위기로 해야 합니다.

-위기중의 위기 레위기, 조이- [130924]

 

 

가분수의 고난은 분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머리만 큰 인생은 배보다 큰 배꼽 인생이며,

예수를 아는 만큼 살 수 있으면 복된 인생입니다.

-예수를 아는 인생, 조이- [130923]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팔아서

자기 백성을 값 주고 사는 구속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받은 성도는

인생을 팔아서 진리를 값 주고 사는 자유자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2).

-명절 자유자, 조이- [130922]

 

 

요즘 시편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詩시한 은혜가 필요합니다.

篇안한 내용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시편이 내편이 되고,

책잡히지 않는 책이 될 테니까요.

-詩시한 시편, 조이- [130921]

 

 

가을은 풍성한 열매로 말합니다.

추석에 행복한 얼굴로 말해보시고,

말로 말하지 말고 말씀으로 말해봅시다.

벗님들 모두에게 복된 명절이 되시기를 축복해요. <3

-복된 명절, 조이- [130918]

 

 

기도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고

기도의 삶은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순종입니다(약4:7).

기도할 때 내 욕구가 요구가 되면 기도가 아니고

하나님의 요구가 내 삶이 되면 그것이 기도입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추석명절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는 말씀순종, 조이- [130917]

 

 

이단 신학은 구원의 본질을 흐려 다르게 아는 것이고,

이단 신앙은 구원의 생활을 흐려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이단 신학을 경계하려면 복음의 본질과 핵심진리를 알아야 하고,

이단 신앙을 경계하려면 새 계명과 산제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삶을 내려놓고

주님의 삶을 내 삶에 올려놓아 봅니다.

-이단 내려놓고 일단 올려놓음, 조이- [130916]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의 말씀을 내 생각에 올려놓아 봅니다.

이미 죽어서 살아 설치는 내 자아를 내려놓고

이미 살아서 죽어 우시는 내 속사람 올려봅니다.

-올려놓음, 조이- [130915]

 

 

우리에게 가장 무서운 개는 편견이다.

나에게 가장 무서운 개는 지우개이다.

남을 물지 않는 개와

나의 생각을 지우지 않아도 되는 개는?

구름 속에 있는 언약의 무지개(창9:13).

-언약의 무지개, 조이- [130914] 참견

 

 

최고의 인생개혁은

옛사람의 죽은 것을 고백하는 것이고,

최고의 삶의 질은

새사람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살아주시는 은혜입니다.

나죽예사(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는

레제나하우스 말통학교의 표어이고 구호이며 비전입니다.

-나죽예사의 종교개혁, 조이- [130913]

 

 

복음은 천국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은 천국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천국의 삶은 내가 죽고 예수가 사시는 믿음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살게 한다(롬1:17).

-복음의 현실, 조이- [130912]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살고,

사람은 밥을 먹어야 살고,

여자는 사랑을 먹어야 산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사는 사람도 있다.

-말통과 삶통, 조이- [130907]

* 말통은 말씀통독으로 말씀읽기, 삶통은 삶으로 통하는 말씀살기!

 

 

성도의 구원은 주님의 은혜이다.

성도의 사랑은 예수의 계명이다.

성도의 사역은 성령의 역사이다.

-역지사지, 조이- [130903]

* 역지사지(易地思之) :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여 봄.

 

 

비 복음을 경계하라!

기복주의와 쾌락주의는 복음의 핵심을 잊어버리게 하기 때문이다.

복음은 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 고백으로 새롭게 살게 한다(갈2:20).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 조이- [130902]

 

 

비 본질을 경계하라!

옛사람의 자화상은 인간의 마음을 빼앗는 우상이기 때문이다.

탐심에서 오는 우상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다(약1:15).

-본질은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리스도, 조이- [1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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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읽기의 목적

성경 : 시119:18

 

성경읽기에는 연대, 지명, 인명, 도표, 사전적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자체는 시간을 초월하고, 공간을 초월합니다. 또한 인명과 지명과 지식을 초월합니다. 물론 이런 지식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처음 성경읽기를 시작하는 어린아이나 새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언제(연대) 어디서(지명) 누구에게(인명) 어떻게(도표) 말씀했는지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초점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으로 체험적으로 예언적으로 왜 나에게 말씀하시는가? 창조의 목적인생의 목적성도의 목적인 초점을 먼저 찾아서 그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는 진리가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렇게 기초 성경읽기가 되면 성경공부는 점진적으로 깊어지게 됩니다.

 

창조의 목적은 사람을 위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창조하시고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하게 하시되 헛되이 창조하지 않고 사람을 살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창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를 출생시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롬8:19). ‘하늘아, 열려라. 창공아, 의를 비처럼 쏟아라.’ 땅에서 구원과 의가 함께 움이 돋아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습니다(사45:8).

 

인생의 목적은 성도(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대학, 직장, 출세, 결혼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인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입니다. 세상에서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하면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서바이벌 인생이 됩니다. 시간을 팔아 소유를 얻고, 소유를 팔아 인생을 사고, 인생을 팔아 예수를 발견하면 최고의 인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세상에 사는 것은 성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입니다. 성도의 목적을 발견한 사람은 세상에 사는 동안 남을 살리는 리바이벌 인생이 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으면 최고의 성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적용 : 성경 읽기를 통해서 인생의 목적을 찾아보아요.

기도 : 성경 읽기를 통해서 창조의 목적과 인생의 목적과 성도의 목적을 찾게 되기를 원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죠이교회, 조상연목사)

 

[성경 읽기의 목적]

감리교 재단 사단법인 행복한가정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행복한 가정' 2013년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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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퍼센트 복음

성경 : 롬1:17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피 흘려 죽으신 은혜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천국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빌3:20).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진수인 로마서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함과 같으니라’(롬1:17)고 말씀합니다. 이는 복음이 믿음으로 살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은혜로 구원받고 은혜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믿을 때 주신 그 은혜가 예수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임마누엘하신 그리스도께서 믿음으로 살게 하는 것이 온전한 복음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복음은 ‘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 고백으로 살게 합니다(막8:33-35).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이미 우리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갈2:20, 5:24).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열심히 종교 생활하는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롬10:2-3). 구원은 은혜로 주시는 믿음으로 받고, 축복은 자기의 노력으로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복음을 오십 퍼센트만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 대하여 엄청난 열심을 갖고 있었지만(갈1:14), 복음의 진수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열심으로 열심을 내고(고후11:2), 그리스도가 주시는 에너지로 힘을 다하여 수고합니다(골1:29).

 

이처럼 우리도 반쪽짜리 복음에서 온전한 복음을 이해하고 구원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복음은 믿음으로 살게 하는 순종이기 때문입니다(롬1:5, 16:26).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듯이 행위로 순종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은혜로 구원받았듯이 믿음의 은혜로 살아지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 믿음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믿음의 은혜로 살아보아요.

기도 : 주의 은혜로 구원받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그 은혜로 사는 믿음이 복음 안에서 ‘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 고백으로 살아지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죠이교회, 조상연목사)

 

[50 퍼센트 복음]

감리교 재단 사단법인 행복한가정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행복한 가정' 2013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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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통(말씀읽기)과 삶통(말씀살기)

성경 : 마4:4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제일 처음 시험문제는 돌을 떡으로 만들면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육신은 밥으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영혼은 그분의 말씀이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님의 대답처럼 동일한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그 해답을 가지고 사는 자들은 말씀을 읽게 될 것입니다. 예전부터 유행하는 ‘특새’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특별 새벽기도회’의 줄임말입니다. 이처럼 ‘말씀통독’의 줄임말은 ‘말통’입니다. 그러면서 말통은 또 다른 의미로 말씀을 담는 통을 말합니다. 통에 밥을 담으면 ‘밥통’이 되고, 김치를 담으면 ‘김치통’이 되듯이 사람이 말씀을 읽고 담아내면 ‘말통’이 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마음에 담아내고 나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말통(말씀읽기)’을 통해서 말씀이 내 마음을 뚫고 들어오듯이, 그 말씀이 내 삶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삶통(말씀살기)’이라고 합니다.

 

‘삶통’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녹아지게 하는 것은 ‘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 고백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옛사람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게 하는 것이고, 복음 안에서 사는 성도는 말씀이 왕 노릇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려면 먼저 말통(말씀통독)을 하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내용을 기준으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읽으려면 먼저 피상적 내용 파악이 아닌 예수님을 읽어낼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눈이 열려 합니다(시119:18). 또한 학문적 지식습득을 넘어서 진리를 발견해야 합니다(요8:32). 그리고 단순한 문자읽기가 아닌 생명을 느껴야 합니다(요6:68).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딤후3:16, 벧후1:21).

 

이제 성경 보는 눈이 열리기 시작하면 나의 길과 주님의 길을 구분하게 되고 내 의지로 간 길에서 주님이 가신 길로 돌이키게 됩니다. 또한 율법적으로 산 것과 은혜로 산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어 말씀을 기준으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내 생명의 주인이 주님인줄 깨닫고 ‘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 고백하며 살게 됩니다.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올 가을에는 더 풍성하게 말씀의 열매가 맺히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 말씀읽기(말통)를 통하여 말씀살기(삶통)가 되도록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 보아요.

기도 : 말씀읽기를 통하여 담아낸 말씀이 말씀살기가 되어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죠이교회, 조상연목사)

 

[말통과 삶통]

감리교 재단 사단법인 행복한가정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행복한 가정' 2013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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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패러다임의 종교개혁

성경 : 롬1:17

 

저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는 채로 태어났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출생합니다. 또한 나는 학교가 어떤 곳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자라나면서 세상이 어떤 곳인지, 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자란 후에는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도 나는 교단과 교회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교회를 다니다가 후에 신학을 공부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한편,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나에게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 우리의 본향인 천국에 대해 늘 궁금했습니다.

 

성경을 통해,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고 주님과 함께 왕 노릇 하며 사는 영원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성경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천국의 그림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돈 많이 벌어 잘 사는 곳이 아니라 예수 믿고 믿음으로 사는 곳이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고달픈 인생살이’가 아니라 ‘행복한 예수살이’라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말해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이런 성경을 통독하면 세계선교와 새로운 패러다임의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성경통독은 단순한 읽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우리에게 문자로 주신 것은 단순한 읽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을 읽어내기 원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통독은 피상적 내용 파악이 아니고 예수님을 읽어 내야 합니다. 성경읽기는 학문적 지식습득이 아니고 진리를 읽어내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읽기는 저자의 생명을 뜯어 먹는 말씀 먹기입니다.

 

성경통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눈치 채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축복하며 선교하는 것입니다. 성경통독은 가장 생산적인 세계 선교이며 하나님의 일입니다. 루터가 1517년 종교개혁을 한 지 약 500여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성경을 아무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루터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대 명제를 발견하였고 중세시대에 면죄부를 팔았던 로마 교황청에 대항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말했습니다.

 

이 종교개혁은 성경통독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발견한 혁명적 사건입니다.

성경통독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종교개혁으로 세계선교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믿음으로 구원’이라면, 성경통독을 통한 새로운 종교개혁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 통독으로 말씀이 왕 노릇하는 종교개혁,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되시는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열방이 복 받게 되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성경통독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선교사들이 우후죽순 세워지고, 하나님이 세계 선교를 이루어주시길 기대해봅니다.

 

적용 :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복된 은혜로 성경 읽는 성도가 됩시다.

기도 : 성경통독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가 주인으로 살아주시는 풍성함을 누리기를 원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죠이교회, 조상연목사)

 

[새로운 패러다임의 종교개혁]

감리교 재단 사단법인 행복한가정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행복한 가정' 2013년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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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

성경 : 창3:15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천지를 창조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비밀로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신약성경 골로새서에는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골1:16, 26-27).

 

창세기에서 인간창조의 비밀은 생명이 왕 노릇하는 창조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 없는 왕 노릇으로 교만불순종하여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한 선악과를 먹고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순종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왕 노릇하게 됩니다. 아담은 오실 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기 때문입니다(롬5:14). 그러므로 한 사람 아담으로 인해 죄와 사망의 법이 시작되지만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됩니다(롬8:2, 고전15:22, 45).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고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몸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가리기 위해 가죽옷을 입히십니다. 그것은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히9:22). 그러므로 인간의 노력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줄기를 끊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아벨 대신 다른 씨, 셋을 주셨습니다(창4:26). 그래서 셋으로 다시 시작하는 여자의 후손이 노아까지 이어집니다. 노아는 세상의 죄악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시대에 믿음으로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히11:7). 노아 홍수이후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 사건을 주도한 함의 자손과 달리 셈의 자손인 아브라함에게 ‘여자의 후손’인 ‘씨’가 약속으로 주어집니다.

 

이 언약 안에 들어 온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언약을 성취한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됩니다. 그리고 그 언약은 이삭과 그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이삭의 아들 야곱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을 이어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요셉을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은 20냥에 팔아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 미리 보냅니다. 그것은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창50:20).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성도는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그 복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적용 : 오늘도 구원받은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 창세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에 따라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죠이교회, 조상연목사)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 
감리교 재단 사단법인 행복한가정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행복한 가정' 2013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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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

성경 : 롬12:1-2

 

산제사로 드려지는 영적예배는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영적예배는 마땅한 예배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는 성도가 삶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첫째, 교회를 분별해야 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곳입니다. 예를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것을 잘 분별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섬기기보다는 교회나 사람을 섬기기도 합니다. 잘 분별하게 되면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귀한 협력자가 되고, 교회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터전이 됩니다.

 

둘째, 자신을 분별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분별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합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범죄처럼 원초적인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 죄로 인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면 선악과 먹은 불순종의 죄를 해결되고,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은 것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해서 죽었을 때, 우리도 그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산 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해서 새로운 생명이 된 성도는 자신이 죽었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에 내 안에서 살고 계심을 느껴야 합니다. 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 고백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분별한 것입니다.

 

셋째, 세상을 분별해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죄가 주장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만약 죄가 자신을 주장하게 하면 세상을 본받게 됩니다. 성도가 세상을 본받지 말아야 되는 것은 세상은 정욕 적이고 마귀 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본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어떻게 본받을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순종하며 사셨던 모습을 본받으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처럼 순종하기보다는 불순종하는 삶을 살 때가 많습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께 순종하는 것보다 내가 나에게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분별하는 것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살아 있으면서도 말씀에 대해서는 죽어 있는 모습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께서 사셔야 만이 세상을 정확하게 분별하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를 다시 죄의 노예로 살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의 말씀을 수종드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옛사람과 이별하고 새사람과 연합하는 연습을 통해서 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 고백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적용 : 하루에 세 번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에 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 고백해 봅니다.

기도 : 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 고백하며 사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죠이교회, 조상연목사)

 

 

[나는 죽었고, 예수 사셨네!] 
감리교 재단 사단법인 행복한가정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행복한 가정' 2013년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레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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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소풍

성경 : 시편116:15

요절 :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15)

 

얼마 전 사랑하는 성도의 어머님이 소천 하시어 청주에 다녀왔습니다. 장례식은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식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의 육신을 땅에 심어 하늘의 열매를 거두는 영광입니다. 육신이 불로 태워질 때 불꽃처럼 아름다운 영화를 보게 합니다. 이미 죽은 자의 영광은 그가 살았을 때 고난이었으니, 아직도 살아있는 자의 영광은 아직도 남아 있는 고난일 것입니다. 우리의 생이 아름다운 고난이기에 죽음 또한 아름다운 장례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히 보십니다(시116:15). 어제가 누군가의 장례식이었다면 오늘은 나의 장례식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한 바울의 고백은 나는 날마다 부활의 삶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새로운 날입니다. 땅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시기 때문입니다(시16:3, 11).

 

1. 보암직한 인생. 창세기에 하와는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보고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워서 그 실과를 따먹고 아담도 그 실과를 먹게 됩니다. 보암직한 세상을 본 눈이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져 세상을 보는 눈은 생겼지만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 눈이 되었습니다(창3:6,8). 이렇게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는 눈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되는 생명의 길도 잃어버렸습니다.

 

2. 보암의 사람들. 이스라엘의 왕정시대는 솔로몬이후 남북이 갈라지게 됩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힘으로 정치를 하려는 권력정치로 열 개의 지파를 갈라서게 만듭니다. 르호보암의 보암직한 정치는 힘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열 개 지파의 왕이 된 여로보암의 보암직한 정치는 종교정치였습니다. 그는 베델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경배를 막고 레위인이 아닌 보통 사람으로 제사장을 삼고 자기 마음대로 정한 날(8월15일)로 절기를 삼아 분열과 분단을 고착화시킵니다.

여로보암의 길은 여로(旅路, 여행하는 길, 나그네 가는 길) 보암직한 길로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 사망의 길입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여행하듯이 사는 인생의 행복이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이길 저길 가보고, 이것저것 해보고 즐기면서 사는 것 인줄 착각하고 살지만 하나님이 없으면 사망의 길입니다. 르호보암이나 여로보암이나 ‘보암’직한 세상 적 방법과 자기들 보기에 좋은 의견을 따른 ‘보암’의 사람들이었습니다.

 

3. 보배로운 성도. 그러나 다윗의 길은 다(누구나 모두 다) 윗길로 가야 살 수 있는 주님이 가신 생명의 길입니다. 다윗의 길을 우리말로 생각해 보면 ‘모두 다 윗길로 가라’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이 다윗이 같던 길로 가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은 다윗이란 이름을 선택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암직한 세상을 마음에 품고 가는 길이 아래 길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가는 길이 윗길로 회복의 길이고 행복의 길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각자의 소견의 옳은 대로 나름 의견을 가지고 세상 적 관점을 따라 갔던 암울했던 사사시대가 있었습니다. 지금 이시대도 사사시대를 방불하여 각자의 소견대로 행하고 나름의 의견들이 분분하고 세상 적 관점들이 주도하는 세태에서 하늘로 소풍가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보암직한 세상을 보는 눈을 감고 보배로운 그리스도를 보는 눈을 열어서 소경으로 살지 말고 성경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적용 : 진리를 못 보는 소경이 성경으로 눈을 뜨면 생명의 길이 보일 것입니다.

기도 : 한 번뿐인 인생 하늘가는 길을 따라가는 성도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죠이교회, 조상연목사)

 

[하늘 소풍] 
감리교 재단 사단법인 행복한가정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행복한 가정' 2013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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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레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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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봄날

 

성경 : 아가서 2:10-13

요절 :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11)

 

1926년 6월 『개벽』에 발표된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1연은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리고 마지막 11연은 ‘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이다. 일제강점기에 이상화 시인은 빼앗긴 조국의 현실을 표현하면서 끝으로 광복을 뜻하는 ‘봄’조차 빼앗기면 안 된다는 결연한 의지를 시로 쓴 것이다.

광복을 의미하는 봄은 ‘보다, 보이다’의 뜻이 담겨있다. 겨울이 지나고 생명의 새싹이 보이면 봄이 온 것이다. 그런데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땅을 빼앗긴 아픈 마음이다. 이처럼 세상에 빼앗긴 마음의 땅에도 하나님의 봄은 오는가? 하나님의 사람이 그 마음을 세상에 빼앗겨 버리면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기 때문에 여전히 겨울이다. 그러나 인생의 겨울이 지나고 말씀의 새싹이 보이면 봄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그리스도가 보이기 시작하면 성경의 봄이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축복이 꽃피는 봄이여 어서 오라!

 

겨울이 지나야 봄은 오는 것인데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이제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치고 땅에는 꽃이 피고 하늘에서는 새가 노래하는 계절이 왔으니 일어나 함께 가자고 속삭인다. 그러므로 성도가 성경에서 자기가 죄인이란 것이 보이면 인생의 봄이 찾아 온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리스도가 보이면 그의 인생에 자유의 봄이 찾아 온 것이다. 자유의 봄이 찾아 온 성도에게 그리스도 예수 꽃향기를 물씬 풍기면 그리스도의 사랑과 축복이 꽃피는 봄이 찾아 온 것이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그리스도가 봄이다. 그리스도의 봄은 5월의 여왕 봄의 계절에 비길 수 없을 만큼 찬란한 생명의 계절이다.

 

주님은 세상에 마음 빼앗기고 실의에 빠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신부에게 일어나 함께 가자고 다가온다. 그분을 통해 성경이 보이는 봄을 경험하면 인생의 겨울은 지나고 영혼의 봄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영혼의 봄날이 되면 향기 없는 꽃이 향기로운 꽃이 되어 무화과 열매 익어가듯 사랑이 익어가고, 포도나무 꽃내음 온 땅에 향기 풍기듯 축복의 향기를 발하게 된다.

 

적용 : 성경을 보면서 자신이 보이기 시작하면 봄이 찾아오는 것이니 성경을 읽어 보아요.

기도 : 지금은 향기 없는 꽃이지만 이제는 예수 꽃으로 향기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죠이교회, 조상연목사)

 

[영혼의 봄날] 
감리교 재단 사단법인 행복한가정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행복한 가정' 2013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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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아이콘

 

성경 : 로마서 10:10

요절 :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고백)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

 

가난해도, 못 배웠어도, 많은 실패를 경험했어도, 몸에 장애가 있어도, 용서받기 힘든 죄를 지었어도 괜찮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마음만 고쳐먹으면, 사람이 변하면, 나머지 것들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능력과 기적을 경험할 수 있는 말씀여행을 떠나면 누구나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은 죄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죽음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행복하지 않아도 감사하다고 고백하면 그는 세상의 현실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신앙고백은 자유자의 외침이기 때문입니다.

 

1. 죄인임을 고백하라. 예수님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본인이 “죄인일 수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합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별 것 아닌 자존심이 아예 그런 생각이나 고백을 하지 못하게 철저히 통제합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면 누구나 처음 나오는 고백은 “나 같은 죄인이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이렇게 뿌리 끝부터 생각이 달라집니다. 내가 죄인임을 느낄수록 주변 사람들이 가까이 오고, 내가 의를 내세울수록 주변의 사람들이 멀어집니다. 생각이 달라지면 환경과 상황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신앙고백은 마음에서 나오는 진리의 외침입니다.

베드로가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그 한 마디 말이면 충분합니다. 이런 경험 있는 사람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이런 고백을 떨리는 음성으로 입으로 고백되어지면 그때부터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천국 같은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멀어질 것 같은데 오히려 사람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사업이 조금 잘됐다고, 자녀가 좋은 학교에 갔다고, 교회 일을 좀 열심히 했다고, 교만해지고 우쭐하여 자기 의를 드러내면 사람들은 점점 멀어져 갑니다.

 

2. 기도는 고백입니다. 표류 당한 두 사람이 구명보트에 몸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망망한 바다뿐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주님, 만약 저를 구해 주신다면 재산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희망이 보이질 않았고 오히려 풍랑만 심할 뿐이었습니다. “주님, 살려주십시오. 살려 주신다면 재산의 3분의 2를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윽고 다시 아침이 되어도 구원의 손길은 닿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시 간절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주님, 제발 저의 이 간절한 기도를 받아 주십시오. 제 목숨을 구해 주신다면 저의 재산 전부를...” 그때 다른 한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이봐 거래를 중단해. 저기 섬이 보여!...” 기도는 거래가 아니고 고백입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십니다. 고난 중에 있지만 주님만이 해결 자이십니다. 기도는 신앙고백입니다.

 

3. 감사는 고백입니다. "나는 누가 '행복합니까?' 라고 물으면 ‘아니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의 고백입니다. 신앙고백 아이콘은 누가 건드리는 불편한 상황과 견디기 힘든 환경에서도 감사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저는 매일 밥을 먹으면서 감사가 쏟아졌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는 자유자의 외침입니다.

 

적용 :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구하는 거래기도가 아닌 신앙고백의 기도를 해보세요.

기도 : 주님 지금 고난 중에 있지만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입술을 주시기를 바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죠이교회, 조상연목사)

 

[신앙고백 아이콘] 
감리교 재단 사단법인 행복한가정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행복한 가정' 2013년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Posted by 레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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