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깨워라/단숨원리-묵상생활'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1.09.12 하나님의 은혜로 묵상하라
  2. 2011.09.12 평면적 지식을 입체적 진리로 묵상하라
  3. 2011.09.12 그리스도로 묵상하라
  4. 2011.09.12 성경을 성경으로 묵상하라
  5. 2011.09.12 아멘으로 읽어라
  6. 2011.09.12 단숨에 읽어라
  7. 2011.09.12 단숨 원리 - 묵상 생활

하나님의 은혜로 묵상하라

성경을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 묵상하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경을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이 열리게 된다. 나는 창세기를 읽다가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과 라멕의 살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하나님은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더하게 하셨다. 또한 살인자 라멕을 죽이는 자는 벌이 77배라고 하셨다. 어떻게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의 죽음에 대한 판결을 이렇게 내리실 수 있는가. 왜 살인한 죄인을 보호하시는지 아무리 좋게 묵상하려고 해도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묵상하니까 죄인을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라 의인을 보호하시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만약에 의인이 아벨을 죽인 살인자 가인을 죽이면 가인과 똑같은 죄인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 때문에 의인이 죄인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벌을 7배와 77배나 더하신 것이었다.

또한 하나님은 죄인을 보호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원수의 머리에 숯불을 얹는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이것이 원수를 구원하고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방법인 것이다. 가인 같은 죄인과 가인보다 더한 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묵상하면 엄청나게 깊은 묵상이 되고 말씀이 깊이 있게 관통되기도 한다.

빌레몬서에는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가 주인을 해롭게 하고 어려움을 준 이야기가 나온다. 빌레몬은 하나님의 은혜로 그러한 종 오네시모를 형제로 두게 된다. 참으로 큰 용서와 사랑이다. 빌레몬서를 읽으면 가끔 빌레몬서 뒤에 손양원서를 써서 추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빌레몬은 종을 용서하고 형제로 삼았지만,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아들을 둘씩이나 죽인 원수를 용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양아들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 일화는 하나님의 은혜다. 빌레몬은 종을 형제로 삼았고, 손양원 목사님은 원수를 아들로 삼았으며, 하나님은 지금도 가인과 라멕보다 더한 죄인들을 자녀로 삼고 계신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알면 알수록 성경이 보인다. 성경을 묵상할 때 의인을 보호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묵상하면 묵상이 된다. 성경의 내용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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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적 지식을 입체적 진리로 묵상하라

초등학교 수학 과정 중에는 평면 모눈종이에 정육면체의 개수를 색칠하면서 입체도형이 몇 개인지 맞추는 문제가 있다. 나무로 만든 정육면체를 입체적으로 쌓아놓으면 몇 개인지 금방 알 수 있는데, 평면적인 모눈종이에 그려 놓으면 이해가 빨리 안 될 때가 있다. 성경은 원래 입체적인 실제 상황들을 평면적인 글로 서술한 것이므로 금방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성경을 통째로 반복해서 단숨에 읽으면서도 묵상이 가능한 것은, 평면적으로 기록된 성경의 지식이 입체적 진리로 보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이 스승 되시면 평면적 내용의 글이 입체적 의미의 글로 보이기 시작한다. 성경의 지식이 아니라 성경의 진리가 묵상되어지는 원리이다.

성경을 통째로 반복해서 단숨에 읽으면, 성령이 스승 되셔서 성경을 깨닫는 마음과 성경을 입체적으로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신다. 구약성경 이사야서에서는 “그 날에 못 듣는 사람이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사 29:18)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날에 주님께서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눅 24:45) 하시면 성경을 진리로 묵상할 수 있다. 평면적 묵상은 깊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입체적 묵상은 성경을 통째로 반복해서 읽는 동시에 묵상이 가능하다. 성경을 깨닫는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면, 성경이 보이고 들리고 알아지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에는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하늘로부터 빛이 바울을 둘러 비추자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고 만다. 그리고 다메섹에 있는 아나니아라는 예수님의 제자에게 기도를 받고 성령이 충만해지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된다. 바울은 세상을 보는 눈은 있었지만 하늘을 보는 눈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눈은 없었다. 또한 성경 지식을 보는 율법 학자의 눈은 있었지만 예수 진리를 보는 눈은 없었다.

성령이 충만했던 스데반은, 성경을 관통하고 진리를 관통하고 하늘을 관통하는 눈으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고 말했다. 그러자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 데 동조하고 그의 죽음을 마땅히 여긴다. 그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세상 보는 눈은 감기게 되고 하늘 보는 눈과 진리 보는 눈은 뜨게 되었다. 자기가 스데반에게 했던 죽어야 마땅하다는 소리를 유대인들에게 듣게 된다. 율법에 매여 사람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 진리에 눈을 뜨면서부터는 복음으로 사람 살리는 일에 앞장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 보는 눈을 뜨게 되면 말씀이 입체적 진리로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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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레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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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 묵상하라

신약에서 복음을 이해하고 구약을 보면 복음이 보이게 되어 있다. 사도바울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된 이후에, 바울서신을 통해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 구약성경을 인용하였다. 성경 전체에서 다양한 형태로 설명되고 있는 복음이 특히 로마서에서 집중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묵상하면 성경의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다가가기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내용을 묵상하기 보다는 그 내용의 본질을 이해하고 묵상하는 것이 더 좋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은 알았지만 성경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는 잘 몰랐다. 본질을 찾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기도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성경의 본질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에 두고 성경을 묵상하면 구약이 복음으로 보인다. 또한 신약의 복음서 전체는 영생으로 묵상되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는 에너지가 생길 것이다. 신약의 서신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묵상하면 복음을 가진 자가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으로 통째로 묵상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환난의 세상에서 이기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묵상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성도에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모습이 묵상될 것이다.

Posted by 레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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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성경으로 묵상하라

성경을 통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사람의 마음에 담아내는 것이고, 묵상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성경 66권 각권은 모두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표현하고 있다. 성경의 각권은 역사적 시대에 따라 하나님의 마음이 다양하게 설명된 것이다. 결국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 다양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에 구약성경의 전체 초점을 알고 있으면 구약성경으로 신약성경을 묵상할 수 있고, 신약성경의 전체 초점을 알고 있으면 신약성경으로 구약성경을 묵상할 수 있다.

사도바울은 구약에 정통한 율법학자였다. 그는 바울서신을 기록할 때 구약을 많이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펼쳐 보였다. 성경을 성경으로 묵상하는 방법은 처음부터 쉽게 되는 방법이 아니지만, 성경을 통째로 읽다보면 점차 성경으로 성경이 통째로 묵상되어진다.

사람의 지식과 상식으로 성경을 묵상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확한 묵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통째로 계속 읽다보면 어느 순간에 성경이 사람을 밝히 조명해내면서 성경을 통하여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한다. 이처럼 성경은 사람이 성경을 묵상하는 것인지 성경이 사람을 묵상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묵상의 주체를 바꿔버린다. 사람이 성경을 깊은 경지에 이르기까지 묵상하다 보면 어느 틈엔가 성경에게 묵상을 당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의 존재는 없어지고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나타나고, 사람의 생각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생각만 묵상되어진다. 성경을 통째로 묵상하는 방법은 성경으로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으로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성령이 스승 되시면 성경으로 성경이 묵상된다.

허상의 세상에서 실상을 묵상하는 방법이 성경으로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다. 이렇게 묵상해야만 없어질 허상의 세상에서 영원한 하늘의 것을 묵상할 수 있다. 허상의 세상에서 실체가 나타나 움직이는 것을 묵상하는 방법이 성경으로 성경을 묵상하는 것이고, 성경으로 성경을 묵상해야만 허상의 현실 세계에서 실체가 움직이는 참 현실 세계를 묵상할 수 있다.

Posted by 레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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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으로 읽어라

신학적 주제와 학문적 지식을 가지고 성경을 이해하려고 접근하면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성경은 학문적인 지식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성령이 조명해 주고 깨닫게 해 주는 것에 초점을 두고 단순하게 읽는 게 좋다. 성경을 분석하고 묵상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해도, 그것이 무엇이며 또 얼마만큼의 유익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성경을 순종할지 불순종할지 선택할 기준으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기보다는 은혜와 감사로 말씀에 “아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묵상할 내용이 성경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순종할 것인지 불순종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하셨던 그 선악과를 잘못 묵상하면 먹음직스럽고 보암직하기에 결국 먹는 결과를 낳고 만다.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셨을까? 깊이 묵상해도 하나님의 마음을 잘 모를 때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냥 “아멘”하고 먹지 않으면 된다. 진정한 큐티 묵상은 믿음으로 살기 위한 묵상이어야 하기에 하나님의 관심은 순종하는 묵상에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한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가 잘 안 되고 묵상도 잘 안 될 것이다. 사람이 생각하는 기준으로 성경을 묵상하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론 성경 지식이 많아도 순종하기 어렵고 신앙생활이 도리어 힘들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묵상하면 쉽게 다가온다. 사람이 구원 받고 싶은 마음보다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구원하셨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보다 사람을 말씀대로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이 더 크기 때문에 사람 안에 임마누엘로 들어오셨고 말씀대로 살아가게 하신다.

사람이 성경을 알고 싶어 하는 것보다 성경이 모든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주고 싶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설명해주려고 모든 언어로 번역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이 있어야 순종하는 힘이 생긴다. 믿음이 없으면 지식적 묵상은 될지 모르지만 실제적 묵상과 적용은 잘 안 된다. 성경을 읽을 때 사람 입장에서 해석하는 묵상을 하면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정확한 초점에서 빗나간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면서 이해도 안 되고 묵상도 잘 안 될 때는 그저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읽으면 된다. 그것이 최선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진리를 알고 싶은 사람은 새롭고 산 길이며 자유가 흐르는 진리를 만나기 위해서 말씀에 붙기 마련이다. 성경을 반복적으로 읽으면 진리가 진리 됨을 발견하게 된다. 진리가 사람의 존재를 조명해주기 때문에 진리를 만나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그 후 용서받은 죄인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분석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목적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아멘’하면 되는 것이다.

Posted by 레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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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어라

성경 읽기의 고정관념은 사람이 성경을 읽는 주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면서 성경을 읽는 것 같다. 나도 그런 생각을 갖고 성경을 통째로 반복해서 단숨에 읽었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셨다. 사람이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사람을 읽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성경은 깨달으려고 읽는 사람 쪽에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시는 쪽에서 성경 읽는 사람을 깨닫게 하셔야 깨달아지는 것이므로 아무리 빨리 읽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성령이 스승 되셔서 빛의 속도보다 빠른 생각의 속도로 성경 읽고 있는 사람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통째로 단숨에 성경을 읽어도 동시에 묵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통째로 단숨에 성경을 읽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방향 감각과 속도감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새 계명인 사랑의 방향 감각으로 사셨던 초점을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처럼 죽었던 산제사의 속도감으로 성경을 읽으면 진리를 관통하는 힘이 나온다. 사도바울도 이러한 방향 감각과 속도감으로 사역을 감당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에게는 달려갈 길과 주께 받은 사명을 가지고 허공을 치지 않는 초점으로 영혼을 사랑한 방향 감각과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산제사의 속도감이 있었다. 성경 읽기도 이러한 방향 감각과 속도감으로 하면,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방향 감각과 속도감으로 묵상되고 적용된다.

운전할 때 차량의 흐름에 맞춰서 운전하는 것처럼, 성경을 읽을 때도 성경 전체에 흐르는 맥과 초점에 맞춰서 읽으면 좋다. 성경을 단숨에 빨리 읽는 방법으로 책 한 권에 대한 맥을 잡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을 하나의 주제로 맥을 잡을 수도 있다. 성경 전체에 흐르는 맥을 잡으면 성경 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내가 성경을 10배속 이상으로 빠르게 통독하면서 경험한 것 중 하나는, 신약성경을 100독쯤 했을 때 마가복음이 마치 스스로 ‘나는 이런 내용이고 이런 책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들리면서 그 책이 깨달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가복음은 자신이 주님의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훈련지침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마가복음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으로 예수님을 증거하고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세계 선교로 섬기라는 내용이다. 서론으로 예수님의 권세교육이 나오고, 본론으로 성도의 사역 초점 교육이 나오고, 결론으로 내세 믿음 교육이 나온다. 마가복음에서는 내세의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이 주신 권세로써 사역을 감당하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빨리 읽는 게 뭐가 좋으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무엇이든지 자기가 하는 일이 좋으면 빨리 그리고 많이 하고 싶은 법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나는 성경을 빨리 많이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매번 말씀 나눔을 통해서 진리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경 통독의 속도는 자신한테 맞게 조절하는 게 가장 편안하지만 좀 더 빨리 읽으면 짧은 시간에 다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처음에는 쫓아가기 바쁘고 묵상이 제대로 안 되는 것 같은 단점이 있지만 사람의 생각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알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성경을 통으로 단숨에 읽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빠른 성경 통독의 유익은, 말씀이 통째로 들리고 성경의 깊은 맛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깨달음과 순종하는 믿음이 생기고 성경 전체의 초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성경을 배우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은 존재의 가치로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왜 배우려고 하는지 목적과 이유가 분명해야 된다. 성경은 지식으로 습득하기 위해서 깨닫는 것도 아니고, 이해하는 것도 아니며, 배우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성경이 깨달아져야 하고 이해되어져야 하고 알아져야 하고 믿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째로 단숨에 읽는 것은 성경의 지식적인 내용에 집중하기 보다는 영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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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 원리 - 묵상 생활 (성경을 단숨에 읽어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은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단숨 원리는 성경을 단숨에 빠르게 읽는 것으로 성경의 내용과 지식에 빠지지 않고 성경에서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묵상하게 하는 묵상 생활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성경 말씀을 묵상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깊은 묵상을 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부분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깊이 묵상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성경 전체를 통째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단숨에 읽으면서 전체의 초점을 관통하고 묵상하는 방법도 있다. 성경을 단숨에 빨리 읽으면서 어떻게 묵상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이 있다. 빌 게이츠는 [생각의 속도]라는 책에서 생각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고 말한다. 보통 사람의 신경 전달 속도가 초속 100m이다. 물론 빛의 속도는 과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다. 빛의 속도로 지구를 돌면 1초에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생각의 속도는 무한대이다. 사람은 생각만으로도 단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은하계를 볼 수 있다. 빛이 할 수 없는 과거 회상이나 미래 예측도 할 수 있다. 상상의 속도로 지구를 돌면, 무한대로 돌 수 있기 때문에 빛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고 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아주 빠른 속도로 성경을 단숨에 읽으면서 빛의 속도보다 빠른 생각의 속도로 성경을 묵상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성경을 읽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우리 교회에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경을 단숨에 읽으면서 묵상을 하고 그 말씀에 대한 묵상 나눔을 매주 갖고 있다. 내 경우에는 성경 66권을 5시간 동안 귀로 들으면서 눈으로 보는 10배속 이상 속도로 단숨에 읽고 있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된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빨라지고 점점 많은 분량의 성경이 통으로 묵상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또한 그 묵상된 내용을 매달 레제나 말통 축제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성경을 함께 읽은 이들과 나누고 있다.

천천히 읽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성경을 단숨에 빨리 읽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꼭 그렇게 읽어야 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연습하면 누구나 얼마든지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있다. 나는 내 경험의 장점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이 성경으로 읽혀지기를 소망할 뿐이다. 단숨에 빠르게 읽으면, 처음에는 성경의 글자를 따라 읽기도 바쁘다. 하지만 점차 이미 알고 있고 밑줄 쳐놓은 부분만이 아닌 다른 부분까지 균형 있게 볼 수 있게 된다.

Posted by 레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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